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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방조어부림과 물건마을



천연기념물 제150호(1959년 1월 23일지정, 지정사유: 방풍림(防風林)의 역사적인 유물) 70개의 크고 작은 섬과 302㎞에 이르는 해안선으로 산과 바다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이 바로 경남 남해이다.

남해에서 300년 동안 거친 파도와 바람에 맞서 마을을 지켜주고 고기를 모이게 하는 곳이 바로 남해 삼동면 물건리에 위치한 물건방조어부림(勿巾防潮魚付林)이다. 남해 12경 중 10경인 물건방조어부림은 바닷가를 따라 초승달 모양으로 길이 1,500 m, 너비 약 30 m로 면적이 무려 2만3438m2이나 되며 부락민들의 공공소유로 되어 있다.

나무의 높이는 대체로 10∼15 m이며 상층목이 약 2,000그루이다.

이곳에는 팽나무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이팝나무 푸조나무 등 낙엽수와 상록수인 후박나무 등 수종만도 100 여 종류에 달해 마치 나무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빼곡하게 들어선 1만여 그루 나무는 깊은 산중의 느낌을 자아낸다.

약 300년 전 마을사람들이 방풍과 방조를 목적으로 심었는데, 마을사람들은 이 숲이 해를 입으면 마을이 망한다고 믿어 잘 보호해 왔다.

일제강점기 말엽 일본인들이 목총을 만들기 위해서 이 숲에서 7그루의 느티나무를 자르려고 했을 때 마을사람들은 총칼에 맞서 이 숲을 없애겠다면 차라리 우리를 죽여달라고 맞서 이 숲을 보호한 일도 있다.

이곳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전주 이씨 무림군(茂林君)의 후손 이 이곳에 정착해 방풍림을 조성했다고 하며 19세기 말께 어느 한때 이 숲을 벌채하였다고 한다.

벌채후 폭풍우가 닥쳐 많은 마을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에 숲을 헤치면 마을이 망한다는 전설이 있어 마을 사람들이 한 가지의 나무도 함부로 베는 일 없이 이 숲은 지켜져 오고 있다.

숲 속에 서 있는 이팝나무의 노거목은 서낭당나무로 되어 있고, 음력 10월 15일에는 제사를 올려 마을의 평안을 빌고 있다.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동글동글한 몽돌밭을 따라 펼쳐진 해안은 여인의 허리처럼 한껏 휘어진 모습이 장관을 이루며 남해바다를 향해 가지를 뻗은 나무들은 남해를 지키는 수호신처럼 당당한 모습이다.



물건리는 방조어부림을 경계로 등대가 있는 포구와 논밭이 있는 물건마을로 나뉘어 진다.

독일마을에서는 물건마을과 방조어부림, 그리고 포구를 한꺼번에 펼쳐 볼 수 있다. 부르기 어렵고 복잡한 이름의 물건방조어부림은 다른 세가지 이름이 있다. 첫째, 거칠고 거센 바닷바람을 막아준다고 하여 방풍림(防風林)이며, 둘째, 쉴 새 없이 달려드는 파도에 의한 해일이나 염해ㆍ조수를 막아준다고 하여 방조림(防 潮林), 셋째, 숲의 초록빛이 남해를 떠도는 물고기떼를 불러들인다 하여 어부림(魚付林)이다.

독일마을이 위치한 물건리는 동쪽을 향하고 있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은 아침 일찍 와서 일출을 보거나 저녁해질때 와서 월출을 보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한다. 동해안에서 일출이라면 정동진을 떠올리지만 남해안에서의 일출은 물건리 일출이 유명하다 한다.

그래서 새해 첫날 새벽은 일출을 보기 위한 관광객들로 물건리는 인산인해로 넘쳐난다. 물건방조어부림 앞의 몽돌해안가와 물건방파제 위에는 일출을 보기 위한 사람들로 새벽은 깨어 있으며, 산허리 독일마을의 독일주택 발코니에서는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일출과 함께 새출발을 다짐하는 사람들로 새해가 시작된다. 

바다 한가운데 서로 마주보고 있는 독특한 암수등대를 갖고 있는 물건항은 얼마전 해양수산부로부터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구로 지정을 받았었다. 암수등대의 풍경을 사진으로만 보던 사람들은 남해에 와서 물건리 등대를 보고 여기가 그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곳은 또한 감성돔,볼락 포인터로 유명한곳이다. 

이 때문에 이곳을 찾는 강태공은 한 해 1만여 명에 이르고 있다. 물건방조어부림 옆에 위치한 물건항에는 봄, 가을이면 바다낚시를 즐기려는 강태공 들로 북적인다. 특히 볼락과 감성돔이 이곳에 많이 몰리는 봄은 야행성인 볼락을 잡기 위해 불을 밝힌 100여 척의 낚싯배가 해안으로 몰려 마치 도시의 야경과 같이 아름다운 장관을 이룬다. 

이곳은 가족 단위, 캠핑 겸한 낚시터로 제격이며, 남해군 삼동면 물건마을에 있는 물건항 어항시설 확충을 위해 만든 방파제로서, 근년에 새로운 낚시터로 각광받고 있는 곳이다.

특히 이곳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물건방조어부림이 있어, 가족단위 캠핑을 겸하여 낚시가 가능한 곳이다.여름에는 몽돌 해수욕장에서 수영도 즐길 수 있다. 

물건방파제는 왠만한 갯바위낚시터 부럽지 않을정도로 조황이 뛰어난곳이다. 감성돔,벵어돔,볼락등 고급어종으로 마릿수 조과를 기대할수있는곳이다. 규모가 크고,넓은방파제이기 때문 가족동반 및, 야영도 가능하다. 

왼쪽방파제가 조과가 낳은 편이며, 도보로도 진입가능하나, 거리가 멀고,험해서 마을에서 수시로 운항하는 낚시배를 이용하면된다. 감성돔은 입구쪽이,볼락은 방파제 끝쪽이 조황이 더좋으며, 방파제 중간쯤 12-13m 수심층을 공략하면 감성돔 입질을 받는다.


소금강 또는 남해금강이라 불리는 삼남 제일의 명산.



금산(681m)은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유일한 산악공원으로 온통 기암괴석들로 뒤덮인 38경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신라 원효대사가 이 산에 보광사를 짓고 보광산이라 불러왔는데, 조선태조 이성계가 젊은 시절 이 산에서 백일기도 끝에 조선왕조를 개국하게 되자 영세불망의 영산이라 하여 온 산을 비단으로 두른다는 뜻으로 금산으로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정상에는 강화도 보문사, 낙산사 홍련암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기도처의 하나인 보리암이 있으며, 불타오르는 여명이 바다에서 솟구쳐 오르는 금산의 일출은 3년동안 덕을 쌓아 볼수 있다하며 그 장엄함이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환희를 가져다 준다.

금산 38경

1.망대 2.문장암 3.대장봉 4.형리암 5.탑대 6.천구암 7.이태조기단 8.가사굴9.삼불암 10.천계암 11.천마암 12.만장대 13.음성굴 14.용굴 15.쌍홍문 16.사선대 17. 백명굴 18.천구봉 19.제석봉 20.좌선대 21.삼사기단 22.저두암 23.상사바위 24.향로봉 25.사자암 26.팔선대 27.촉대봉 28.구정암 29.감로수 30.농주암 31.화엄봉 32.일월봉 33.흔들바위 34.부소암 35.상주리 석각 36.세존도 37.노인성 38.일출경


남해대교와 충렬사



제주도, 거제도, 진도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 큰섬. 창선·삼천포대교 개통 이전까지 남해의 관문은 동양 최대의 현수교라 불렸던 남해대교이다.

남해대교는 길이 660m, 높이 80m의 아름다운 현수교로 1973년 개통된지 3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일컬어지고 있다.

남해대교가 가로지른 노량해협의 거센 물살은 남해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산 증인이요, 역사의 마당이었다.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이 시작된 곳으로, 또 고려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무수한 유배객들이 자신의 적소로 건너오기 위해 나룻배를 탔던 한맺힌 곳이었다. 남해대교가 놓여지기 전, 남해사람들은 나룻배를 타거나 도선으로 노량의 물살을 가로질러 다녀야 했지만 30년 전부 터는 승용차로 1~2분이면 거뜬히 물을 건넌다.

남해를 육지와 연결한 남해대교를 건너면 벚꽃터널이 반긴다. 봄이면 하늘이 보이지 않는 벚꽃의 터널이 장관이다. 벚꽃터널을 지나 노량마을로 내려오면 충무공 이순신이 관음포에서 전사한 후 시신을 잠시 모셨던 충렬사와 바로 앞 바다에 떠 있는 실물 크기의 거북선이 있다.

남해충렬사의 가장 큰 특징은 이순신 장군이 3개월간 묻혔던 자리에 아직도 가묘가 남아 있다는 점이다.

1598년 11월 19일 돌아가신 충무공의 유해는 충렬사 자리에 안치되어 있다가 1599년 2월 11일 전라땅 고금도를 거쳐 외가동네인 아산 현충사 자리에 운구되어 안장되었다. 충렬사의 역사는 장군이 돌아가신지 34년이 지난 1633년에 한칸의 초사를 건립하여 제사를 봉행하면서 시작된다. 남해충렬사는 규모가 통영충렬사 등에 비하면 매우 작지만 1973년 6월 11일, 사적 233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으며, 우암 송시열이 짓고 송준길이 쓴 이충무공묘비와 사우 그리고 충무공비와 충민공비, 내삼문, 외삼문을 모두 갖추고 있으며 청해루와 장군의 가묘가 잘 정리되어 있다.


상주해수욕장



남해에서 가장 빼어난 풍경과 일류 해수욕장이 갖춰야 할 면모는 모두 갖추고 있는 곳이다.

부채꼴 모양의 해안 백사장, 눈앞에 펼쳐진 작은 섬들은 바다를 호수모양으로 감싸고 있으며, 이성계가 백일기도를 드려 조선건국의 성업을 이루었다는 금산을 배경으로 잔잔한 파도를 일으킨다.

여름 한철에도 100여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전국 최고의 상주해수욕장은 이제 사계절관광지로 발돋움하고 있다. 겨울에도 전지훈련을 오는 운동선수들과 봄, 가을에도 수련활동을 갖는 학생들과 연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반월형을 그리며 2km에 이르는 백사장의 모래는 마치 은가루를 뿌린 듯 부드러우며, 주단 위를 걷는 감미로운 감촉을 느끼게 해 준다.

백사장을 감싸고 있는 송림은 잔잔한 물결과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는 상주의 자랑거리다. 바다밑은 기복이 없고 완만한 경사를 이루어 어린이들의 물놀이에도 안성맞춤이다. 가까운 곳에 강물이나 다른 오염원이 없기 때문에 바다 밑바닥 모래를 헤아릴 수 있을 만큼 물이 맑고 깨끗하다. 상주를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는 금산 38경, 보리암과 일출 장관은 누구나 한번쯤 보고 싶어하는 절경이다 .


창선교와 원시어업죽방렴



지족해협에 건설된 창선교는 창선면 지족마을과 삼동면 지족마을을 잇는 길이 440m의 콘크리트 사장교로 95년 12월20일 개통되었다.

아마 지난 93년 성수대교가 붕괴되기 며칠전에 창선교가 붕괴되어 남해군민에게는 기억하기 싫은 사건중에 하나 이기도하다. 창선교 아래를 흐르는 지족해협은 26통의 원시어업 죽방렴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좁은(손) 바다길이라 하여 '손도'라 불리는 지족해협에 V자 모양의 대나무 정치망인 죽방렴은 길이 10m 정도의 참나무 말목 300여개를 물살이 빠르고 수심이 얕은 갯벌에 박고 주렴처럼 엮어 만든 그물을 물살 반대방향으로 벌려 놓은 원시어장이다. 지족해협은 물이 맑고 물살이 빠르기 때문에 이곳에서 생산되는 수산물은 담백하고 쫄깃하기 이를데 없다. 물이 흐르는 때를 보아 하루 두차례 뜰채로 생선을 퍼내는 모습을 보면 자연산 싱싱한 회 생각에 절로 군침이 돈다. 특히 멸치, 개불, 미역은 지족해협 최고의 특산물이다. 남해섬에 딸린 또 하나의 섬, 창선도와 이어진 440m의 창선대교는 1992년 한차례 붕괴되어 95년 12월에 다시 개통됐다.

다리 위에서 낚시대를 드리워도 한 가족 먹을 좋은 횟감은 얻을 수 있는 지족해협은 죽방렴과 바다, 갈매기와 백로가 어우러진 진풍경을 자랑한다. 특히 이들과 함께하는 일몰광경은 말 그대로 장관이다. 원시어업 죽방렴은 가천마을의 암수바위와 함께 남해에서 가장 독특하고 가치있는 문화자산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충무공전물유허



남해대교에서 섬의 한가운데를 향해 4Km 들어오면 사적 제232호 관음포이충무공전몰유허가 자리잡고 있다.

일명 이락사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노량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전사한 이순신 장군의 유해가 맨처음 육지에 오른 곳이다. 이락사 앞 뜰에는 충무공 순국 4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유언비가 역사를 증명하듯 하늘을 향해 힘차게 솟아 있다. 이락사가 순국성지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장군이 전사한지 234년이 지난 1832년이었다.

이순신 장군의 8대손으로 통제사가 된 이항권이 이곳에 나라를 지켰던 장군을 기리는 유허비와 비각을 세웠다고 한다. 이곳에는 전국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사철 푸른 육송이 404년 전의 그 날을 되살려내고 있었다.

많게는 10개에서 적게는 4개의 가지가 땅에서 바로 가지를 벌린 채 4,50미터의 오솔길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조국을 향한 애타는 마음이 소나무에도 투영된 것일까? '이락사' 현판이 걸린 문을 들어서면 바로 '대성운해'라는 박정희 전대통령의 친필 현판이 걸린 비각이 있다. '大星隕海'라. '큰 별이 바다에 잠겼다' 뜻이다. 비각에서 첨망대까지 연결된 솔밭길은 500m에 이른다. 길의 좌우에는 솔가지 사이로 보이는 바다가 정취를 더 한다. 첨망대에서 바라보면 노량해전의 전장이 한눈에 보인다.


가천암수바위와 남면해안



암수바위, 다랭이논으로 유명한 남면 가천마을은 어머니가 아기를 안고 있는 모양을 한 남해섬의 회음부에 정확하게 위치하고 있다.

새 새명을 탄생시킬 신성한 곳인 셈이다. 일명 삿갓논, 삿갓배미라고도 불리는 다랭이 논은 남해인의 근면성을 보여주듯 층층이 계단을 이루고 있다. 옛날에 어떤 농부가 논을 갈다가 집에 가려고 삿갓을 들어보니 그 안에 논이 하나더 있더라는데서 유래된 삿갓논은 짜투리 땅도 소중히 활용한 남해인의 억척스러움을 대변하고 있다.

다랭이 논의 의미를 되새기며 바라보는 가천마을의 풍경은 옛 전통을 그대로 간직한 한 폭의 수채화 같다. 가천마을의 또다른 자랑거리는 암수바위. 높이 5.9m의 수바위와 4.9m의 암바위로 이뤄진 암수바위는 발기한 남자의 성기와 애기를 밴 어머니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전국에서도 가장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있다. 조선 영조27년 이 고을의 현령 꿈에 한 노인이 "가천에 묻혀있는 나를 일으켜 달라"고 부탁해 땅을 파보니 암수바위가 나타났다고 한다. 이 바위를 발견한 뒤로 매년 제사를 지내도록 한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마을의 평안과 풍어를 바라는 제사가 매년 열리고 있다.

다랭이 마을 뒤쪽에 있는 설흘산(488m)은 망산과 인접해 있다. 설흘산에서 내려다 보면 깊숙하게 들어온 앵강만이 한눈에 들어오고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인 노도가 아늑하게 보인다. 설흘산 정상부근에는 봉수대의 흔적이 남아있다. 원래 봉수대는 주위를 넓게 관측할 수 있는 곳에 정한다. 설흘산 역시 한려수도와 앵강만, 망망한 남쪽 대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일출의 장관이 유명하다. 남면 홍현의 무지개마을에서 오르면 가장 가깝지만 가천마을에서 북쪽으로 곧바로 오르거나 멀리 임포에서 시작하면 칼바위 등을 지나는 등산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서포 김만중선생유허



현재 16가구 43명이 살고 있는 작은 섬 - 노도. 섬에서 바라보는 금산의 절경과 앵강만의 풍광 못지 않게 구운몽과 사씨남정기의 작가 서포 김만중이 56세의 일기로 유형의 삶을 마감했던 곳으로 더욱 유명하다.

벽련(碧蓮). 말 그대로 짙고 푸른 연꽃, 3천년만에 핀다는 우담바라의 마을 바로 앞 삿갓처럼 생긴 섬이 바로 노도이다. 서포가 생을 마감한 지 308년이 지난 지금 노도에는 그가 직접 팠다는 샘터와 초옥터, 그리고 허묘가 남아 그의 자리를 쓸쓸히 메우고 있다. 조선 후기 정치가로서, 문신으로서, 효자로서, 소설가로서, 한글애호가로서, 시인으로서, 한시대를 풍미한 대문호 서포의 발자취가 그 고뇌스런 일생과 함께 서려 있는 남해의 작은 섬 노도는 유배문학의 산실이다. 남해는 서포 김만중 외에도 기묘사회로 유배당한 자암 김구 선생이 13년간의 기나긴 유배생활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섬으로 들어가는 길이 어렵지만 벽련마을 안에서 어선을 이용하면 쉽게 섬에 갈 수 있다.


송정해수욕장



상주해수욕장에서 동쪽으로 4km, 미조 초등학교에서 북서쪽으로 3km 떨어진 곳에 있는 송정해수욕장은 특색있는 남국의 정취, 환경적으로 완벽한 해수욕장의 이미지를 주기에 충분하다.

남해군은 1999년 7월 송정생태주차공원을 개장하고 해수욕장 주변 가로등에 꽃바구니를 설치했다. 해수욕장을 운치 있고 낭만적인 공원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부드럽고 은빛이 나는 백사장과 명경지수(明鏡之水)같은 바닷물이 송림을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고, 자연경관이 수려하다. 맑은 바닷물과 송림으로 유명한 이곳은 서남향의 부드럽고 은빛 나는 백사장 앞으로 탁트인 남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와 찾는이의 마음을 시원하게 열어준다.

백사장 길이 1,500m, 폭 90m, 면적은 15,120평에 이르며, 수온은 연평균 18℃. 송정의 또 다른 매력은 해수욕장을 조금만 벗어나면 커다란 돌덩이 같은 몽돌과 기암괴석이 뒤섞인 단애의 해안을 구경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해수욕을 한 뒤, 짠내를 씻어내며 때묻지 않은 자연의 청량감을 느껴볼 수 있는 멋진 해안이다.

송정해수욕장 부근은 경관이 너무 아름다워 관광지 지정을 받았다. 경상남도와 남해군은 송정해수욕장을 비롯하여 부근 25만평 부지를 2011년까지 714억원을 투자하여 공공시설과 숙박시설, 그리고 야영장, 휴양소, 전망대를 만들어 국제적인 해양휴양지로 개발할 계획이다. 송정까지 왔다면 아름다운 항구, 미조항에 반드시 들러 싱싱한 회를 맛보고, 활기차고 부지런한 어민들의 생활상도 한번 체험하는 것이 좋다. 아니면 물미해안도로를 따라 섬을 나가면서 물건방조어부림과 창선교, 죽방렴을 구경하든지...욕심 많은 사람은 둘 다 하든지...